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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5 (14:38) from 211.48.246.213' of 211.48.246.213' Article Number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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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부자 가문 형성에 미친 풍수지리 연구
경주 최부자 가문 형성에 미친 풍수지리 연구

경주 최부자 가문형성에 미친 풍수지리 연구

碩士學位論文

嶺南大學校 環境保健大學院
環境設計學科
風水地理專攻
이선우
指導敎授  朴時翼·朴贊龍

경주 최부자는 경주 최씨의 始祖 孤雲 崔致遠의 20世孫인 在卿 崔國璿(1631-1682)으로부터 29世孫인 汶坡 崔浚(1884-1970)에 이르는 약 300년(1650년대-1950년대) 최해진, 「경주 최부자의 경영사상과 경제적 부의 지속요인에 대한 연구」(1997), p.337
동안에 9代進士, 10代만석꾼(또는 9代 혹은 12代) 9代로 보면 崔義基, 10代로 보면 崔國璿, 12代로 보면 崔震立부터 富의 始作으로 본다.
으로 富를 누린 경주의 慶州崔氏 家門의 累代를 말한다.  이하 崔富者로 略稱한다.

그런데 최부자는 단순한 富豪가 아니라 9代 派始祖 최진립부터 최부자의 마지막 인물인 최준에 이르기까지 12명중 최승렬·최언경 2명만 과거에 실패함으로 정무공 이후 9명이 進士試에 급제하였음으로 9대 진사라 함.
에 걸쳐 進士의 위치를 가진 兩班階層으로서 子孫代代로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驕慢과 奢侈를 멀리하였다.
또한 正當하게 부를 形成(蓄積)하고 또 그 부를 適切하게 사회에 還元(行事)함으로써 백성들의 존경과 칭송을 받은 부자이며, 또 부의 소멸과정 역시 그 부의 濫用과 誤用 내지 더 많은 부를 축척하려는 過度한 投資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부를 국가의 光復을 위하여 全 財産을 받쳐 독립운동 자금을 대고 남은 富를 국가를 興하게 하기 위하여 敎育投資목적으로 사용하였다. 汶坡 崔浚은 1919년 부산에서 독립운동가인 白山 安熙濟와 함께 출자하여 白山商會를 설립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공급함. 이로 인하여 두 차례 獄苦를 치루었을 뿐만 아니라 전 재산이 빚에 넘어가게 된 후 부채탕감을 받았다.
  부채탕감 이후에도 은밀히 上海 臨時政府에 자금 송금은 지속되었다.
  
  解放後 국가발전의 초석을 다지기 위하여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대학설립을 계획하여 1947년 3월 10일에 民立大邱大學〈1967년 청구대학과 통합하여 현재의 영남대학교가 됨〉을 설립하고 남은 전 재산과 귀중한 서책 8,900권〈汶坡文庫〉을 이 재단에 기탁함으로써 최부자의 마지막을 정리하였다.

그러나 최부자 가문은 當時 多産의 社會相에 비추어 子孫(아들)이 귀한 편이다.

이처럼 300년간 큰 부를 끊어짐이 없이 유지하면서 주위의 존경을 받는 부자가 된 것은 東· 西를 通해서 흔치 않는 事例이다.
「부자는 하늘이 내려준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富者의 誕生은 인간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풍수에서는  ‘인걸은 산청정기를 받고 태어난다‘(이중환의 말)고 보는데 최부자의 탄생은 明堂의 氣運이 크다고 본다.
실제 3代 이상 유지되고 있는 富貴의 家門뒤에는 명당의 陰陽宅이 있는 것으로 풍수가들은 확인하고 있다.
부호로서 성공하기까지는 그 가문의 노력도 물론이지만 풍수지리와도 관련이 있다.

최부자가 300년이란 長期間 富를 누린 원인으로 이 집안의 특유의 家訓을 살펴보고 최부자의 음택과 양택을 풍수지리적인 사고의 틀로 分析하고자 한다.
풍수에 따르면 인간은 땅으로부터 地氣(生氣)를 받아야 萬福을 누리며 이를 위해 좋은 터에 집을 짓거나 조상의 묘를 써야 한다.
그러나 풍수라고 오직 묘터나 집터와 같은 땅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積德도 중시한다.
적덕을 하지 않고는 큰 명당자리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명당의 효력을 볼려면 지속적인 적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한다.
최부자의 집터와 묘터가 명당일 뿐만 아니라, 최부자의 積善行爲 가훈에 따라서 자손 대대로 평소에 많은 사람을 도우니, 鄕里에 있어서는 누구나 대소간에 急한 일이 있으면 모두 親疏를 막론하고 다 빌려주고는 擔保로 받은 文書를 모두 불태우고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飢餓民들을 관청이 하는 이상으로 대규모(쌀 年間 1천석)로 구제하니, 어려운 백성들에게 솥을 걸어 놓고 죽을 끊여주던 活人所가 남쪽 울산시 두동면 봉계,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백운대 등에 있었다.
  한편 평소에도 백리 이내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였으며, 손님과 과객을 厚하게 대접하며,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송금하고 마침내 전 재산을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을 설립하는데 사용하였다.
가 오랜 부의 형성과 유지에 필수적이었다고 보기에 본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이다.

目     次


Ⅰ. 序論
  1. 硏究의 背景
  2. 硏究의 方法  
  3. 先行 論文 및 資料

Ⅱ. 風水와 發福
  1. 韓國 風水思想의 根源
  2. 風水理論
  3. 發福
     - 富를 中心으로

Ⅲ. 崔富者家門의 家系와 富의 形成
  1. 家系
  2. 富의 形成
  
Ⅳ. 崔富者家門의 遺訓
  1. 遺訓의 意味
  2. 家訓
  3. 家居十訓
  4. 六然

Ⅴ. 崔富者家門의 陰宅과 陽宅 考察
  1. 伊助里 마을
  2. 校洞집
  3. 貞武公墓
  4. 風水的 判斷

Ⅵ. 結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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